해열진통제는 감기, 두통, 생리통 등 다양한 증상 완화에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. 하지만 동일한 증상을 완화해도 성분마다 체내에서 작용하고 배설되는 경로는 크게 다릅니다. 본 글에서는 대표적인 해열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, 이부프로펜, 나프록센, 아스피린의 대사 경로를 비교하여, 복용 시 주의해야 할 점과 약물 선택의 기준을 제시합니다.
1. 아세트아미노펜: 간에서 대사되는 중추성 진통제
아세트아미노펜은 중추신경계에서 작용하는 대표적인 해열진통제로, 위장관 자극이 적고 사용이 간편하다는 이유로 널리 쓰입니다. 체내에서는 주로 간에서 대사되며, 대사 과정 중 약 90%는 황산화(sulfation)와 글루쿠로니드화(glucuronidation) 경로를 거쳐 무독성 대사산물로 전환됩니다.
그러나 남은 약 5~10%는 간의 사이토크롬 P450 효소계(CYP2E1, CYP3A4 등)에 의해 NAPQI(N-acetyl-p-benzoquinone imine)라는 독성 대사산물로 변환됩니다. NAPQI는 소량일 경우 글루타치온(Glutathione)과 결합되어 배설되지만, 과량 복용 시 글루타치온 고갈로 인해 간세포 손상이 유발되며, 심하면 급성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간 기능에 의존하는 만큼 음주자, 간 질환자, 고령자는 용량 조절이 필요하며, 일반 성인의 경우 1일 4,000mg을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. 아세트아미노펜은 신장에서 대부분 대사산물 형태로 배설되지만, 대사 자체는 전적으로 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. 따라서 간독성 리스크를 가진 환자라면 다른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고려해야 합니다.
2. 이부프로펜: 간 대사 후 신장을 통한 배설
이부프로펜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(NSAIDs)로, 주된 작용은 말초 조직에서의 COX-1, COX-2 효소 억제를 통한 프로스타글란딘 생성 억제입니다. 대사 경로는 주로 간에서 이루어지며, 대사산물은 대부분 신장을 통해 배설됩니다. 이는 이부프로펜이 신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.
이부프로펜은 간에서 산화, 환원, 가수분해 등의 과정을 통해 대사되며, 대사에 관여하는 주요 효소는 CYP2C9입니다. 이 효소의 유전적 다양성에 따라 이부프로펜의 반응성 또한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. 대사산물은 생리활성이 거의 없으며, 대부분이 24시간 내에 배설됩니다. 그러나 만성 신장질환 환자의 경우, 이부프로펜의 배설이 지연되어 체내 축적 위험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.
또한, 이부프로펜은 신장 혈류를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에, 신장 혈류 감소, 수분 저류, 나트륨 배설 저하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. 이 때문에 이부프로펜은 신장질환자, 심부전 환자, 이뇨제를 사용하는 환자에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.
이부프로펜은 대부분 짧은 반감기(약 2~4시간)를 가지고 있어 하루 3~4회 분할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, 위장관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간에서 대사 후 신장을 통해 배설됩니다. 따라서 간뿐 아니라 신장 기능을 고려한 약물 선택이 중요합니다.
3. 나프록센과 아스피린: 유사한 경로, 다른 특성
나프록센은 간에서 대사되며 주로 글루쿠로니드 결합 형태로 전환된 뒤 신장으로 배설됩니다. 반감기가 길어 하루 2회 복용으로 충분한 약효를 유지할 수 있으며, 만성 질환 환자에게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. CYP 대사 효소의 관여는 적고, 간 대사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약물 상호작용 가능성은 낮은 편입니다.
하지만 장기 복용 시 신기능 저하, 위장 장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고령자나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 정기적인 신장 및 위장 상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.
아스피린은 약리학적으로 COX-1을 비가역적으로 억제하는 특성이 있으며, 특히 혈소판 응집 억제 작용으로 인해 심혈관 질환 예방에 활용됩니다. 대사 경로는 간에서 하이드롤리시스(hydrolysis) 과정을 통해 살리실산으로 전환되며, 이후 신장에서 배설됩니다.
아스피린은 산성 환경에서 흡수가 잘 되고, 혈장 단백질과의 결합률이 높으며, 대사산물의 배설은 소변의 pH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. pH가 알칼리성일수록 배설이 빨라집니다. 하지만 위 점막 자극이 크고, 출혈 위험이 있어 장기 복용은 전문가의 관리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, 소아는 절대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.
해열진통제는 같은 증상을 완화하더라도 성분마다 대사 경로, 작용 부위, 부작용 양상이 다릅니다. 아세트아미노펜은 간 대사 중심, 이부프로펜은 간 대사 후 신장 배설, 나프록센과 아스피린은 간에서 대사 후 신장을 통해 배설됩니다. 따라서 환자의 간·신장 기능, 복용 목적, 병용 약물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성분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한 약물 복용의 핵심입니다.